593,382! 무슨 숫자일까? 지난해 한 해 동안 중국에서 상표등록을 출원한 건수이다. 올 해는 100만 건을 훌쩍 넘기리란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경제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중국기업들이나 개인들이 상표권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등록건수가 눈덩이 불듯이 불어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우리기업들의 기업경영에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는데 있다.
최근에 무역관을 찾은 한국기업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상황을 어림짐작 할 수 있다.
이곳에 진출한 우리기업이 지난 몇 년간 칭다오 모지역에서 임가공을 해 잘 수출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갑자기 해관(세관)에서 수출물량이 압류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유인즉 그 기업이 한국에 등록해 쓰던 상표를 중국기업이 중국에 상표등록을 하고 이를 해관에 통지하여 ‘상표권 침해’로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기업으로서는 그 상표를 중국에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권리 주장을 하기 어려웠으며, 곤란에 처하게 됐다. 그야말로 기업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건은 웨이하이에서 낚시대를 제조해 수출하고 있는 한 투자기업은 수년전 한국에서 한 바탕 일본기업과 상표전쟁을 치러 승리를 했었는데, 최근에는 그 일본기업의 칭다오 투자업체가 현지 한국투자업체를 제소하여 2라운드 상표권 전쟁을 치르고 있는 건이다. 기업들 간에 모기업 간의 싸움을 넘어서서 투자기업 간 상표권 전쟁이 본격화 되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한국의 유명자동차 회사도 중국에 진출하면서 똑같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중국의 관련 회사가 수년전에 그 자동차 이름을 상표로 등록 시키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상표라 상표등록을 하지 않아도 보호받을 수 있지만, 법원에 제소를 해야 하며 이 경우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이 높지만 제품이 당장 출시돼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재판을 할 수 없었으며, 이에 따라 제소를 포기하고 관련 중국기업에게 상당한 대가를 제시하고 무마하였다.
문제는 우리기업들이 상표권에 무방비 상태인 경우가 많다는데 있다. 실제로 관련 자료에 따르면 우리기업들은 대부분 분쟁이 발생하고 나서야 상표등록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가 우리상표(한국에만 등록)를 가지고 중국에서 만들어 가지고 나가는데 무슨 문제가 있으랴하는 경우가 다수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중국내에서 파는 것이 아니기에 한국이나 수출대상국에 상표등록을 하면 다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중국법원의 사법해석(법률적 권한을 가지는 구체적인 법률해석)이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 누구도 확실한 결말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련 전문가에게 들은 일화에 따르면 미국에 상표등록 된 제품을 중국에서 OEM제조해 미국으로 판매하다 상표권 침해로 제소된 경우가 있었는데, 베이징 법원은 그 제품의 사용자(소비자)가 미국인이고 그곳에 상표등록이 돼 있으므로 상표권 침해로 볼 수 없다‘는 해석을 했다. 그러나 광둥의 법원에서는 그런 방식의 OEM제조 수출은 상표권 침해라는 다른 해석을 내린 것이다. 즉, 똑같은 상황이 한 지역에서는 상표권 침해가 되고, 한 지역에서는 상표권 침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만큼 이 문제는 법률적 해석에 있어 상당히 미묘한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기업을 상표권 침해로 몰고 가는 기업들은 누구일까?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우리기업을 잘 아는 중국기업(경쟁기업 또는 거래관계가 있던 기업)들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상표권 침해제소건은 전혀 엉뚱한 기업이 하는 경우보다, 우리를 잘 아는 기업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복잡한 특허등록과 달리 상표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용이하게 등록할 수 있는 관계로 중국기업들이 외국상표들을 마구잡이로 등록하는 경향이 있어, 우리로서는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다.
우리 기업들에게는 상표등록이 그렇지 않아도 부담을 주는 현지 경영환경에서 또 다른 짐이 되는 것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상표등록을 적극적으로 해야, 그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상표권은 특허등록(중국의 국가 및 지방의 지적재산권국에 등록)과 달리 공상행정관리국 산하의 국가상표국에 등록하며 관리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도 상표등록 ‘선출원주의(먼저 등록하는 자가 그 권리를 가짐)’를 채택하고 있음을 들어 현지 진출 전에라도 상표등록을 가급적 빠른 시기에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출원에서 등록까지 다른 기업의 이의제기 가능 기간(3개월)까지 포함하여 일 년 6개월 정도 소요된다. 기업이 직접 하기보다는 전문 상표등록 대리기구들을 통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상표등록 시에는 현재 사용하는 상표는 물론이고 미래를 예측해 유사상표를 여러 개 동시에 등록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요쿠르트 업체인 대만의 ‘와하하’는 유사한 ‘와와하’,‘하와하’ 등등을 전부 등록 관리하고 있으며(등록 후 3년간 실질적인 사용을 하지 않으면 취소될 수 있다), 자기의 업종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라면, 의류, 광천수 등)에도 등록하고 있다.
이제 중국에서는 상표등록이 기업의 생존을 넘어선 장기 발전을 위한 전략의 일부가 된 것이다.
자료원: KOTRA 칭다오 무역관
